자녀의 정서교육 - 지켜보기, 공감하기, 보여주기 자녀교육, 소통하기
* 아이를 안아준 의사
이사오기 전의 도시에 살 때의 일이다. 규원이가 돌무렵에 영유아검진을 하러 소아과에 갔다. 정기검진은 보통 귀찮아서 안 가는 경우가 많은데 첫아이라 조심스러워서 가게 되었다. 규원이는 감기를 거의 앓지 않아서 병원에 가는 일이 적었고 특별히 잘 가는 소아과가 없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지역카페 엄마들이 추천하는 곳으로 갔다. 의사가 기독교인이고 가끔 봉사활동을 가서 문을 닫기도 하는 병원이었다.
의사는 미리 작성한 설문지를 보며 대충 질문을 하고 확인했다. 늘 하는 일이라 지치는 듯 건성으로 하는 기색이 역력하여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러다가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체크한 것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규원이가 신생아황달이 심각해서 태어나자마자 대학병원에 일주일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아이구..’하더니 내 무릎 위에 있던 규원이를 데려다가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두 팔로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약간 황당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그렇게 진한 포옹을 해주는 것도 이상하고, 게다가 보통 의사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렇게 안아주는 게 무슨 필요가 있지?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이상한 행동은 내 기억에 남았다. 2년쯤 지난 후에 나는 그 기억이 났고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소아과의 의사는 엄마들에게 핀잔을 주기로 유명하다. 단지 집이 가까워서 다닌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뭘 잘못해서 그렇다는 투로 무안을 준다. 그 사람은 규원이 두돌 때 영유아검진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까탈스럽지만 성실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다음 번부터는 영유아검진에 가지 않게 되었다. 또 그 핀잔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의 식사, 운동, 발달 등 여러 부분에 자세한 정보와 조언을 주지만 사실 그런 것은 인터넷 검색하면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소 귀에 경읽기’처럼 한 귀로 흘러가고 마음에 남지 않는다.
* 해결책보다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사람이 말로 하는 해결책은 대부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고민거리에 대해 ‘이렇게 하면 되잖아?’ 하고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도움 되는 경우가 드물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다. 흔히 여자들이 공감을 원하고 남자는 해결책을 내놓아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어긋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둘러보면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그렇고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해결책이 아닌 깊은 공감이 더 중요하다.
아이에게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말로 하는 것보다도 한 번의 따뜻한 포옹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당시에는 내가 그런 제스처를 해석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뭐 하는 짓인가?’하는 의아한 마음을 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걱정하며 한 번 안아주었을 때, 그 마음은 순수한 것이고 영적으로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고민을 해결해주려고 발로 뛰며 직접적인 노력을 해줄 수도 있지만,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줄 수 있다. 그렇게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특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 경우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마음으로 그 사람의 문제가 풀리고 잘 되기를 빌어주는 편이 낫다.
쉽게 해결책을 말하는 것은 대부분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처지를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함부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하면 해결되는데 왜 못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누구나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금(金)기운이 발달한 사람들이 그렇다.
“저기 저 사람은 왜 얼굴에 있는 흉터를 제거하지 않았을까? 요즘 저런 것 고치는 데 얼마 들지 않는데 정말 이상하네.”
“아니 왜 돈이 있는데 좋은 물건을 안 사는 건지 정말 이상하네. 노숙자 귀신이 붙었나?”
남을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고 이상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진실이 있다.
* 아이를 키우면서 공감의 문제에 부딪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동안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문제로 많이 부딪친다. 규원이의 공부나 놀이를 도와주면서 다툰다. 규원이가 서툴러서 하지 못하는 것을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하고 시범을 보이면 규원이는 화가 나서 ‘나 안 할 거야. 엄마 미워.’라고 한다. 아직은 서투르지만 그저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잡아주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이렇게 해야 맞지.’라고 아이를 교정하려는 습관에 이끌린다. 이것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내 행동을 교정한 적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든 글씨를 쓰든 내가 한 일에 대해 늘 칭찬만 해 주었고, 고쳐야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OO가 정말 멋지고 예쁜데 한 가지 ~~만 잘 하면 백 배 더 멋진 OO가 될 거예요.’라고 말해서 마음에 거부감이 들지 않게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방식이 지나치게 아이를 위하는 가식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태도가 지금 규원이와 다투는 나에게 필요한 모습인 것 같다.
* 송과체 인간과 편도체 인간 - 꿈꾸는 자와 도망자
책에서 읽어 보면 이것은 아이의 두뇌 중 어느 쪽의 호르몬을 개발시키느냐의 문제라고 한다. ‘~을 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긍정적인 방식의 교육은 아이의 송과체를 자극하여 유익한 호르몬을 방출시킨다. ‘~을 하면 안 된다. ~을 하면 나쁘다.’라고 말하는 부정적인 방식의 교육은 아이의 편도체를 자극하여 스트레스호르몬을 방출시킨다. 이 두 방식의 교육에 따라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 나가게 된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느냐, 나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느냐, 이렇게 상반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쪽은 목적이 분명한 반면, 나쁜 일을 피하는 쪽은 목적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끌려다니며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의존하고 욕먹을 일을 피하고 창피를 당하지 않고 체면을 세우기 위해 살아가느냐, 이 두 방식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후자의 방식으로도 적당히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에서 건설적인 큰 일을 이루어낼 수는 없다. 건설적인 행동은 모두 꿈을 꾸어야 가능한 일이고, 꿈을 꾸는 것은 주체적인 소망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행복이다. 송과체형 인간은 작게 이루어도 행복할 것이지만, 편도체형 인간은 크게 이루어도 불행할 것이다. 긍정적인 정서를 갖도록 교육해야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 유년기 정서 교육의 중요성
아이에게 문제를 지적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은 아이의 감정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그렇다. 중고생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칠 때는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나뭇가지가 어릴 때는 유연하지만 자랄수록 굳어지듯이 사람의 감정과 사고체계도 그렇다. 사람이 30살쯤 되면 인성이 거의 바뀌지 않는 수준에 들어간다. 특별히 마음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똑같은 방식으로 평생을 산다. 그러므로 유아기, 아동기에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을 잘 지도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며 이것이 부모의 주된 역할이다.
* 지켜보기, 공감하기, 보여주기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며 돕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심각하지 않다면 아이가 하는 방식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부족하더라도 어차피 나이 들면 잘 하게 되고 당장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보다 낫다. 잘하든 못하든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 중요하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칭찬을 해서 그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
아이의 실수나 문제에 대해 지적하기보다 그 상황에 공감해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랬구나. 손이 힘들어서 색칠을 잘 하기가 힘들었구나. 엄마도 너 만할 때 그랬어. 나중에 밥 잘 먹고 쑥쑥 크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속상한 일이 있다면 한참 공감을 해 주고 아이의 마음이 진정된 뒤에 약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줄 때 곧바로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것은 거부감을 주기 쉽다. 그럴 때는 그저 시연해서 보여주기만 하면 아이가 스스로 따라한다. “엄마는 이렇게 해 봐야지. 이렇게 하니까 더 잘 되고 재미있네.” 생활의 전반적인 측면에서는 아이는 부모의 모든 언행을 그대로 따라하므로 아이에게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일 것이다.
‘지적하지 말고 공감해주어라.’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몰라서 아이를 키우며 깨달아가고 있다. 육아가 도리어 엄마를 인간이 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교학상장이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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